얼마 전이었다.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데, 아버지가 TV를 보다 감탄을 하셨다. 9시 뉴스나 국방부 홍보물도 아닌 화장품 광고에 철모를 쓴 군인이 나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집어든 게장에서 양념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캬하’ 하며 놀라워 하셨다. 그리고는 군인이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끝없이 쏟아내시는 것이었다. 모든 ‘군대 얘기’가 그러하듯, 듣는 사람에게는 지루할 뿐이다. 어쨌거나, 군인이 무슨 피부관리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군필자 남동생은 ‘군인도, 멋부리고 싶어요. 많이….’ 라고 응수했다.
이제 ‘남자들이 화장품을 쓴다는 것’은 뉴스거리도 못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스킨푸드의 ‘수박 위장크림’ 광고가 신선한 이유는 그들이 ‘군인’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성 정체성이 다양화된 시대에도 ‘군인’은 언제나 ‘마초적 남성’의 꼭지점에 서 있다. 빡빡 깎은머리, 우중충한 군복, 군화, 군용 빤쓰
까지…. 도무지 화장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심지어 피부관리라니?! 그제야 번뜩 깨닫게 된다. ‘그래, 너희도 한창 멋부릴 나이구나. 여드름 하나에신경이 곤두설 나이구나.’ 하고. 어쩌면 스킨푸드의 이 광고는 새 시대의 선포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군인들마저도 피부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그러나 가장 감탄스러운 점은 이 신제품을 진정 귀엽게 담아낸 TV광고이다. 앳된 얼굴로, 그래도 선임이랍시고 이등병을 챙기는 훈훈한 모습, 여자 친구의 부재로 형성되는 내무반 특유의 공감대, 서로의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는 장난끼 어린 손길까지…. ‘이등병’에 대해 사람들이 가질 법한 ‘호감’들을 고스란히 브랜드 이미지에 투영해 냈다.
눈길 한번도 얻기 힘든, 광고의 홍수 시대에 이처럼 ‘미소’를 불러 일으키는 광고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이 나라는 내가 지킨다’라는 군인의 공공 슬로건을 적절히 활용한, ‘여친 없어도 내 피부는 푸드가 지킨다’는 카피를 읊는 순간 이 광고의 묘미는 제대로 느껴진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우리 군인’들을 지켜주는 스킨푸드라! 이 얼마나 절묘한 포지셔닝인가! 스킨푸드는 이 광고 한 편으로, 신데렐라에게 호박마차를 만들어준 요정이나 콩쥐의 깨진독을 막아주던 두꺼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광고를 보고 ‘그래! 내 피부는 내가 지킨다!’며 위장크림을 사러가는 이가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이 광고가 우리나라의 국방문화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어렵지 않게 가늠해볼 수 있다. 아마도 ‘수박 위장크림’은 곧 ‘고무신들의 필수 품목’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구, 우리 아들은 여자 친구도 없는데!’ 하고 가엾어 하며 지지 않고 매장으로 달려갈 엄마, 누나,여동생들과, “꼭 사달라는 건 아니고…” 하며 수줍은 편지를 쓸 국군 장병의 늠름한 모습도 상상이 된다.
그뿐이랴! 군대 시절을 안주 삼는 대한민국의 군필자 남성들이 밥상머리에서, 회식자리에서, 커피자판기 앞에서 이 광고 얘기를 신나게 나누지 않을까 싶다. 추억을 음미하느라, 결국 게장은 반 마리밖에 드시지 못한 우리 아버지처럼…. 이 광고가 상기시키는 이미지와 추억들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다만 ‘내게는 희미한 위장크림 냄새가 나는 듯한 광고’ 였기에 그 느낌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던 그 시절을, 아버지와 함께 추억하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말도 아울러 해두고 싶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진다. 여러분들은, 이 광고를 보고 어떤 상념에 잠기셨는지….
[내가 본 광고이야기] 군인들도 피부관리 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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