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글 최인아
영화 ‘건축학 개론’ 이 큰 인기를 끌었지요. 이 달에 소개 드리는 책도 건축가가 쓴 책입니다. 한데 사랑 얘기는 아니고 도시 얘깁니다. 저자 이경훈 씨는 건축가이자 대학의 교수입니다.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건축을 공부한 후 그 곳 건축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 건축을 제대로 공부한 데다가 수년간 이 곳을 떠났다가 돌아와서일까요. 줄곧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서울을 보는데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은 도시가 아닙니다. 천 만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니요.
도시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방향과 서울이 반대로 가고 있다는 일갈인데요, 예를 들면 길과 거리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 부족부터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길과 거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길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고 연결이라면, 거리는 과정이고 경험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래서 길이 숲이나 벌판을 가로지르는 자연의 영역에 가깝다면 거리는 인공적 구경 거리들과 함께 조성되는 도시에 가깝다고요. 따라서 도시가 삭막하다는 것은 거리가 삭막하다는 뜻이며, 걷기 좋은 거리, 걷고 싶은 거리의 존재야말로 도시 생활의 상징이자 기쁨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의 거리들은 모두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상점과 카페들이 가득 늘어서 있는곳들인데 최근엔 서울에도 이런 거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가로수 길 · 홍대 앞 · 삼청동 등인데요, 아, 그러고 보니 가로수 길은 가로수 거리라고 불러야 더 맞지 싶네요. 걷고 싶은 거리 얘기를 하다보니 뉴욕을 전 세계적으로 다시 자리매김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생각이 납니다.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줄곧 걸어서 다녔어요. 손이 모자랄 만큼 쇼핑백을 잔뜩 들고서도 그랬는데 걸으면서 수다를 떨고 쇼 윈도우를 기웃거리고 그러다가 카페에 들어가 다리를 쉬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고… 차를 타고 휑 하니오가는 게 도시생활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로 알았습니다.
저자는 서울을 도시답지 않게 만드는 아홉 가지를 꼽는데,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도 물론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한데 저자는 아파트 그 자체보다 ‘아파트 단지’를 더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도시란 본질적으로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의 만남이고, 도시에 산다는 것은 생활의 상당 부분을 공유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이랍니다. 한데 ‘아파트 단지’는 절대로 바깥 세상과 섞이지 않겠다는 듯 아주 배타적으로 선 긋기를 하는 거라고요. 문제는 이런 풍경이 도시를 또 한 번 삭막하게 만드는데,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네요.
우리는 문제로 여기지 않는데 건축가가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문화랄까 관습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남향 고집’인데요, 몇 년 전 어떤 건설사는 천 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를 지으면서 전 세대 남양 배치를 자랑스레 내세우더랍니다. 저자는 이런 대목에서 혀를 찹니다. 모든 동이 남쪽을 향하게 하려면 학교 때 종례를 서듯 일렬 배치를 해야 하고, 당연히 두 번째 줄부터는 사계절 내내 앞 동의 뒷 면만 보게 되죠. 여기에 무슨 개성이 있고 아름다운 경관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최근엔 3베이, 4베이 등 전면에 배치하는 칸의 수를 최대한 늘린 설계가 유행인데, 이런 배치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답니다. 베이 수가 늘어날수록 집의 깊이가 얕아져서 난방이 무척 비효율적이 된다고요.
책을 읽는다는 건 참 즐거운 경험입니다. 모르던 것을 새로 알게 될 때나, 막연히 알던 것의 본질을 제대로 알게되어 눈앞이 환해질 때 참 즐겁죠. 한데, 이 책은 제게 즐거움보다 부끄러움을 더 많이 ‘선사’하네요. 저의 무식함과 이기적인 마음들이 통렬히 깨지는 경험이었는데요,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도시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묻기 때문입니다. 또한 ‘도시 생활이 어때야 하는가’ 라는 화두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삶이 어때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고요. 그럼에도 이런 거시적인 관점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앞으로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로 바꿔 생각해봐도 되겠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마주치게 되죠. 한 번쯤 각자의 인생을 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