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칸 라이언즈 세미나
칸의 햇살은 뜨겁다. 하지만 바닷가임에도 건조한 기후라 그늘만 들어서도 바람이 서늘하다. 2012년 칸 세미나를 준비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딱 그랬다. 뜨거운 열정과 서늘한 긴장감이 시간 단위로 교차하는 수개월이었다. 칸은 축제이자 동시에 전장이니까. 한쪽에서는 크리에이티브를 무기로 사자 사냥이 벌어지고, 또 한쪽에서는 세미나를 무기로 기업PR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칸이다. 에이전시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나이키 등등 소위 잘나가는 기업들의 세미나 참여가 늘면서 경쟁의 양상은 해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제일기획 세미나의 타이틀은 ‘Korean Wave through Digital Wave’였다. 디지털은 2008년 이래 칸 세미나에서 당사가 유지해 온 키워드다. 여기에 올해는 특히나 칸에 모인 마케터들과 크리에이터들의 관심과 흥미를 효과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들을 상대로 당사의 기업PR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국가적 가치 또한 높일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얻은 답이 한류, 그 중에서도 K-Pop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K-Pop은 유튜브에 Rock, Classic 등과 함께 하나의 장르로 구분되어 있다. 콘텐츠 유통 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온 주인공인 유튜브에 한 나라의 대중음악이
세미나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반부는 K-Pop을 통해 바라본 디지털 시대 컨텐츠 마케팅의 성공 비결에 대한 대담이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에서 K-Pop을 바라본 브루스 헤인즈(Bruce Haines) 부사장과 K-Pop 열풍의 진원지라고도 볼 수 있는 동남아를 총괄하고 있는 김성종 상무가 대담을 이끌었다. 후반부는 K-Pop의 당사자인 2NE1이 등장해 자신들과 K-Pop의 성공에 디지털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Bruce 부사장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 45분의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총 7개의 동영상과 2NE1의 라이브 공연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보다 매력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모든 요소를 밀도 높게 채워 넣었다.
세미나의 핵심은 D로 시작하는 세 개의 키워드, ‘Doing, Diversity, Dear Friend’로 요약된다. 우선 Doing이란 디지털 시대 성공적인 컨텐츠는 단지 좋아하는 것(Liking)에서 끝나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Doing)으로 귀결됨을 말한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무수한 K-Pop 커버댄스 동영상이 K-Pop의 힘이다. 쉽고 중독적인 노래와 안무를 직접 부르고 춤추고 자랑할 수 있다는 점이 참여와 공유라는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컨텐츠의 힘 역시 여기서 나온다. 세미나에서는 싱가폴에서 갤럭시노트 런칭을 위해 진행됐던 소녀시대 커버댄스 캠페인의 성공 사례를 통해 Doing을 부르는 컨텐츠의 힘을 증명했다.
Diversity는 강력한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만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세분화된 타겟의 니즈에 맞게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K-Pop 스타들은 주로 그룹으로 활동한다. 하지만 한 그룹 안에서도 멤버 저마다의 개성이 살아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윤아를 좋아하는 팬과 수영을 좋아하는 팬의 취향이 다르지만 그들 모두를 소녀시대의 팬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시대는 검색과 웹서핑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가 훨씬 용이해진 시대다. 선택의 여지가 늘었고 니즈는 더욱 세분화되어 간다. 그 안에서 두텁고 폭넓게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역시 K-Pop 그룹과 같은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Dear Friend란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같은 전통 미디어 시대 스타들과 K-Pop 스타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차이에서 나온 말이다. K-Pop 아티스트들은 소통을 위해 자신들의 일상적인 모습, 생활의 단면들을 활용하는 데 무척 익숙하다. 이런 모습을 두고 2011년 NY Daily News에서는 ‘K-Pop 스타들은 마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과거 마치 닿을 수 없는 영웅처럼 TV나 신문 같은 일방향 매체에 의해서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스타들과는 달리, K-Pop 스타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마치 친구와 사적인 대화를 하듯 팬들과 호흡하고 있다는 얘기다. SNS로 대표되는 사적이고 양방향적인 소통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더 이상 일 방향적인 소통은 먹히지 않는다. 브랜드가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K-Pop 스타들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주제 상으로는 K-Pop이라는 글로벌 이슈를 활용했고 전략적으로 2NE1이라는 셀레브리티 Co-Speaker를 선정했으며, 형태적으로 전, 후반을 나누어 구성하고 라이브 공연으로 마무리를 하는 등 올해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단행했다. 전사적으로 많은 부서의 다양한 인력들이 인고와 긴장의 수개월을 보냈고, 전략적으로 선정한 2NE1이라는 Co-Speaker가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으며, 치밀하게 계획된 사전 홍보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 덕에 1,000여 명의 관객들이 객석을 메웠고, 200여 명의 프랑스 현지 팬들이 2NE1을 보겠다며 몰려왔고, 많은 사람들이 고마운 찬사를 전해주었다. 조직위원장은 ‘보통 세미나에는 5분 정도만 앉아 있는데 주제가 재미있고 신선해서 자리를 뜰 수 없었다’며 다음 스케줄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심지어 내년 자신들의 세미나 준비를 위해 제일기획을 방문해야겠다며 명함을 건네 온 이국의 CD도 있었다.
하지만, 세미나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올해의 반응이 아닌 앞으로의 세미나가 결정할 것이다. 다음 세미나에, 나아가 광고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결국 평가의 기준이 될 거란 얘기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올해의 세미나가 광고계 전체의 흐름과 미래를 향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해 칸에서는 당사를 포함해서 광고 외 분야의 셀레브리티를 동원한 세미나가 많이 눈에 띄었다. 전직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서부터 거리예술가 JR, SF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 소설가 알랭 드 보통, 건축가 자하 하디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일 아이콘 데보라 해리 등등. 이를 단순히 집객용 용병 기용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광고가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적 트렌드가 보인다. 광고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콘텐츠’ 형태로 거듭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오길비&매더의 Miles Young CEO는 ‘디지털 기술은 우리 모두를 컨텐츠 프로듀서로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 콘텐츠 유통의 주체는 소비자다. 소비자가 스스로 퍼뜨릴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역과 분야를 넘어선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 즉 초대된 셀레브리티들 대부분은 광고 외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며, 우리는 그들에게서 보다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콘텐츠 마케팅에 대한 K-Pop의 시사점을 다룬 이번 세미나 역시 그 흐름에서 무관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늘한 긴장감 속에서 뜨겁게 고민하고 더 나은 세미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칸에서 배울 점이 어떤 크리에이티브가 상을 타느냐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53개의 세미나 속에 다가올 변화의 단초와 마주선 문제의 해답이 숨어 있다. 칸 광고제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짧은 클립들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한 발 더 나가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