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눈 - 류남길 MBC애드컴 CD
기사입력 2003.01.02 03:21 조회 8261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리기 마련이다.(아무리 밀리지 않으려 해도) 또한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기 마련이다.(이 또한 밀지 않으려 해도) 하지만 장강은 안다. 밀건 밀리건 그 물결, 바다에 이르러 하나가 되는 것을…” 얼마 전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 투수가 생애 최초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해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좌완투수로 이름을 날려왔건만 유독 골든 글러브와는 인연이 멀었던 그이고 보면 어쩌면 올해는 최고의 한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동렬 투수가 보유하고 있던 국내 최다승 기록 갱신(147승)에 이어 일본과의 아시안게임 결승전까지, 두 주먹 불끈 쥐던 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 반짝 스타는 많다. 누구나 한 순간 잘하는 것 역시 쉽다. 하지만 저렇게 지속적으로 오래오래 잘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 사유로 어쩌면 우리 광고는 또 하나의 마라톤이 아닐까. 어느 한 구간 반짝 피치를 올리기보다는 끝까지, 끝까지 지속적으로 잘해야하는 42.195의 마라톤.’’ 그렇다면, 그렇게 오래오래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체력이 관건인 운동선수야 보약과 성실한 훈련이 하나의 답이겠지만 우리 광고계의 마라토너들에겐 무엇이 답일까요?

생각이 이 부분에 이르면 늘 가슴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행히도, 우연히 다른 동네 사람들(들뢰즈&가타리)의 말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만 미터 심해를 들여다본 고래의 충혈 된 눈”이란 문장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래, 눈이다. 만 미터 심해에 잠겨있는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눈, 제품과 시장 그리고 광고주의 속마음을 통찰하는 담연하고 강밀한 ‘눈’ 말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제게도 그런 심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고래의 눈을 바탕으로 오래오래 잘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소시민적인 새해소망을 가지고 지난 한 달 동안 집행된 몇 편의 TV광고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사쿠라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고소미란 과자광고의 유민, 백설 군만두와 SK텔레택의 아유미. 이 두 명의 일본출신 여성이 대한민국 광고계(연예계)를 종횡무진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최초의 본격적인 일본출신의 모델들이 아닐까 싶은데, ‘나랑 놀자’를 외치는 ‘심심타파’편을 제외하면 그 참신성에 비해 정작 광고는 모델의 어눌한 말투를 활용하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이에 반해 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일본인 모델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일본의 어느 간이역, 영화 철도원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서정적인 영상을 뒤로하고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 두 마디의 카피, 가쓰오 우동!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저 흰수염 고래의 눈을 가진 광고인이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제품의 깊은 맛만큼이나 맛있는 광고였습니다. 모쪼록 오래오래 잘하시길 응원합니다.
 

마네의 엉덩이 vs 드가의 눈

  일본인 모델에 이어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마네의 엉덩이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 TV를 켜면 광고 속 모델들이 죄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흔들어댑니다. 마치 자동차 정비소에 붙어있는 천박한 포스터의 모델들처럼 말입니다. 광고의 우열을 논하기 이전에 그 불순한 의도에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 엉덩이의 주범들은 대우건설의 김남주, 하이트맥주의 고소영, 미즈의 이소라, 그리고 무슨 과자광고의 무명모델까지.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광고인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광고주의 취향이 더욱 중하게 작용했으리란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하고 계신 것처럼 과연 소비자들이 엉덩이를 좋아할지에는 의문이 갑니다. 주부들이 주 결정권자인 아파트의 브랜드 이미지광고, 여고생이 주 Target인 과자광고인데 말입니다. 그런 연유로 그분들에게 엉덩이를 뛰어넘는 한 편의 광고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MBC대통령선거방송 광고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차를 마시다가, 그리고 일에 몰두하다가 무엇인가 하나의 점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눈, 그 시선의 끝에는 MBC대선방송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광고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사유하게 됐지만 유독 한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 심플한 광고를 만들자면 참 많은 반대의견, 혹은 첨가 · 변형의 유혹들이 많았을 터인데 어떻게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관철시킨 것일까요? 광고주는 물론 심지어 대행사 내부에서조차 팀원 · CD · 임원 등 여러 압력이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바다를 들여다보는 고래의 눈을 넘어, 내?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추진력,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지혜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물론 Big Idea는 누가 봐도 좋다라는 부러운 정설도 있지만 말입니다.)
 

희석 호러 픽쳐 쇼 vs 베이직의 힘

  2002년 하반기를 강타한 ‘니들이 게 맛을 알아?’에 자극 받아서였을까요? 패스트푸드점들은 이 달에도 개그맨 남희석의 언어유희적인 말장난을 즐겨 사용하고있습니다. 그 중에는 파파이스의 ‘게 서거라’처럼 재치의 단계까지 올라선 광고가 있는가 하면, 피자헛 리치의 ‘깨어나세요’편이나 롯데리아 ‘990버거’처럼 말 그대로 말장난의 범주에 머무르고만 아쉬운 광고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장난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제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광고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이정재, 이미연이라는 당대의 모델을 더블 캐스팅한 맥심 오리지널의 광고입니다. 빅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카피의 힘입니다. “사랑의 향기는 영원하다!” 다음은 배우 이나영이 등장하는 맥심 카푸치노 광고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풍경, 낮은 지붕과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 그리고 ‘훔치고 싶은 부드러움’이라는 절묘한 카피와 함께 구름을 컵에 담는 참신한 아이디어. 아, 베이직의 힘은 영원하다!
 

쉽게 가려는 유혹 vs 무명氏의 반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서 일까요? 정우성의 파리바게트, 김현주의 뜨레쥬르, 원빈의 베스킨라빈스, 아역 심혜원의 크라운베이커리 등 유난히 제과업계의 물량공세가 두드러진 한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죄다 빅 모델 일색입니다. 음..... 도대체 왜 그럴까요? 이에 반해 제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온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광고가 있어 소개하고자합니다. 물론 빅 모델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내용인즉 황량한 모래사막의 어느 한 점에 여인이 서 있습니다. 그녀의 빌 끝에서 하나의 점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그녀를 떠나가는 한 남자의 발 밑에까지 번져갑니다. 멈춰서는 남자, 이윽고 그 점은 점점 그 남자의 온 몸을 물들이기 시작하고 여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줄의 카피, “새로운 점을 만나다. 포스트 포털- 네이트 닷 컴”이 광고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습니다.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도 보여집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이야기한다면, 대단하지요?

새로운 포털 싸이트의 탄생을 이렇게나 매력적으로, 이렇게나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니. 참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마도 이 광고를 만든 이들은 ‘만 미터 심해를 들여다 본 고래의 충혈 된 눈’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아니면 적어도 평소에 술안주로 고래고기를 즐겨 드시는 분들이던지. 흰소리가 길었습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장강의 강물처럼 유장한 광고를 만들어주십시오. 반짝 사라지는 바람에 머물지 않고 끝까지, 오래오래 좋은 광고인으로 남아주십시오. 광고란 42.195의 마라톤이니까, 그리고 저도 열심히 노력할 터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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