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나 사는 곳이 어디든 한국 대중음악으로 자신을 뽐내 보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도 있단다. 누군가를 떨어뜨리고 끝까지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 끝에 자신의 스타성을 대중음악 전문가와 청중들로부터 인정받으면 무려 3억의 상금도 받고,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잡게 되는 MBC 공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최종우승자 백청강이 이룬 것은 자신의 꿈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마이너인 ‘조선족’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재외 한인 가운데 가령 미국 거주 한인은 재미 교포, 일본 거주 한인은 재일 동포라고 하면서도 유독 재중 한인에 대해서만큼은 교포나 동포 같은 살가운 말 대신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바탕에는 차별, 멸시, 거부감 따위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백청강은 ‘조선족’보다는 ‘연변청년’으로 불린다. 사회의 주변에서 마이너 인생을 살던 그가 이른바 대한민국 메이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문화 예술 컨텐츠의 힘이다.
예전에는 한겨레로서 ‘연변동포’라고 살갑게 부르던 재중한인은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 노동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험하고 보수 적은 일을 하러 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차츰 ‘조선족’이라는 야박한 표현으로 바꿔 불리게 되었다. ‘조선족’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여러 민족 가운데 한족을 빼고 13번째로 많은 소수민족을 이루고 있는 재중 한인을 가리키는 중국의 공식 용어다. 그러나 법무부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조선족’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 공식용어가 아니다.
KBS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우리 연변에서는~’으로 시작하는 허풍쟁이 이미지로 재현되던 조선족의 모습은 우습지만친근했다. 그런 조선족의 이미지는 영화 <댄서의 순정>(2005년)에서 ‘국민 여동생’ 소리를 듣던 문근영을 통해 자본의 힘에 팔려와 공권력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치를 돌이켜보게 하는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 되는 징검다리였다.
‘조선자치주 댄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한국으로부터 초청받은 언니 대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온 채린은 조선족 신분으로 한국에 머물며 뭐라도 하기 위해서는 영세(박건형)와 위장결혼을 해서 체류 자격을 확보한다. <댄서의 순정>은 리얼리티를 배제하고 인공적으로 디자인된 영새의 주거 공간, 화려한 댄스스포츠 의상과 무대가 주는 시각적 판타지와 간드러지게 ‘아즈바이~’를 부르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주는 청각적 판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연변 자체를 판타지로 만들면서 조선족 문제를 중심에 놓는 대신 상업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 상황, 사건을 구성하는 장식적 요소로 소비했다.
그렇게 조금 낯설면서도 친근하던 조선족의 이미지는 연변의 택시운전사 구남(하정우)이 한국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아내를 찾기 위해 불법적으로 위험천만한 뱃길로 황해를 건너 청부 살인에 말려드는 살육극 <황해>를 통해 소름끼치게 무시무시한 살인자 무리로 바뀌었다. 치정과 불신 때문에 사람 죽여 달라고 돈뭉치를 건네며 병에 걸려들게 한 건 한국사회다. 힘들고 보수 적은 일을 맡기는 것도 모자라 치정 살인조차 조선족에게 떠맡기고서는 그 뒷감당을 못해 서로 쫓고 쫓기며 죽고 죽인다. 여기서 조선족 사회는 돈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며, 연락 끊긴 가족을 대뜸 오입질에 넋 빠진 원수 취급하는 모진 세상으로 그려진다.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한국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조선족을 상상하고 재현한 영화적 악몽이라면, 장률 감독의 <망종>은 중국 사회에서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어떤 지를 실제로 드러내는 현미경이다. 중국에서 소설가이자 중문학 교수로 재직했던 경력을 가진 조선족 감독 장률은 첫 장편영화 <망종>(2005년)에 이어 올해 개봉한 <두만강>(2009년)에서도 중국 안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고 있는 조선족을 그리고 있다.
1990년대 이전 주로 조선족 공동체 안에서 거주하던 중국 조선족은 조선족 공동체를 떠나 도시지역으로 재이산되는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의 문제,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 유지 문제, 남성과 여성의 문제, 교육의 문제 등을 야기하고 있으며 <망종>은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거리에서 당국의 허가 없이 김치를 팔아 생활하는 조선족 순희가 팔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노동과 문화가 집약된 생산물인 김치이지만, 남성들은 그녀로부터 김치를 사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녀의 ‘성’만을 탐한다. <망종>은 여성으로 사는 게 처절하다는 이유로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는 않는 상황에서 조선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지옥인 지를 말한다.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조선족을 소재로 써먹는 영화든, 정치적으로 현실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든 조선족 문제에서 가장 밑바닥 어두운 그늘에 여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두만강>에서 장률 감독은 카메라를 자신의 실제 고향이자 순희의 고향이었을 연변으로 가져간다. 할아버지와 말 못하는 누이와 살고 있는 소년 창호의 어머니는 연변의 다른 많은 어른들처럼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 가끔 전화로나 서로의 그리움을 나눌 수 있다. 연변의 조선족 사회에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어 식량을 구하러 오는 북한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굶주린 북한 사람들은 작정하고 기획 탈북을 하기도 하고, 조선족 마을에서 식량을 얻거나 훔치기도 하고, 심지어 강간도 저지른다. 소년 창호에게 한국으로 떠난 엄마는 여전히 그리운 가족이고, 병든 동생을 위해 음식을 구하러 오는 북한 소년은 함께 축구를 하고픈 벗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조선족을 차별하고 의심하듯, 중국 당국과 조선족 사회도 북한 동포를 꺼리고 몰아내려 한다.
이렇듯 중국과 북한, 그리고 남한 사이에서 제대로 고정되지 못하고 떠도는 조선족의 이미지 때문에 백청강은 <위대한 탄생> 우승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썼다는 근거없는 비난에 시달리고, 조선족의 몰표로 우승한 것이라는 시샘도 받았다. 그러나 마침내 백청강은 자신과 한국 대중 사이에서 ‘조선족’에 대한 색안경을 벗겨내고, 스스로를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같이 즐기고, 그 노래로 우리를 더욱 흥겹게 만드는 친근하고 성실한 이웃이자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스타의 모습으로 바꾸어냈다.
자신이 받은 상금 가운데 음반제작비를 뺀 나머지의 절반을 보육원에 기부하는 인정 많은 백청강은 그러나 여전히 ‘동포’보다는 ‘연변청년’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마이너로 부류되는 많은 종류의 소수인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이 남아 있다. 백청강은 태어난 지역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표면에 떠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문화예술 컨텐츠들은 이렇게 소외되어 있던 마이너 인생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컨텐츠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시선도 역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새로운 영웅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변방에서 태어난다.
[& culture] 대중문화에 비친 조선족과 연변, 그리고 백청강의 위대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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