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REPORT] Reborn, Repositioned, Revived Roads, 홍대 앞과 서촌길, 길의 미시사회학
Text. Hwang Dong Il (Contents Planner)
태초에 길은 없었다. 신이 만든 피조물의 목록 중에 길은 들어 있지 않았다. 사람이 걷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길은 생겨났다. 처음에 혼자 걸어간 곳을 여럿이 함께 걸어 사람의 냄새와 족적이 오랜 시간 퇴적하면 그곳은 길이 되었다. 그러니까 길은 가장 인간적인 발명품이며, 그 자체로 인류가 남긴 발자취이자 그 발자취의 집적물이다. 따라서 길의 속살을 들여다보는일은 곧 사람의 속살, 곧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과 시대의 욕망과 지향, 그리고 시대정신의 향방을 살피는 일이 된다. 길 속에 길이 있다!
우리의 경우 또한 다르지 않다. 다사다난한 대한민국 현대사를‘길의 미시사’(微時史)를 통해 되짚어보는 일은 자못 흥미롭다. 해방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화 과정을 겪으면서 길은 물자와 재화를 빠른 시간 내에 실어 나르는 ‘생산성과 효율’의 공간이 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그 자체로 ‘조국근대화’의 대동맥이자 으뜸 상징이었다. 그 대동맥으로부터 검은 아스팔트 정맥과 모세혈관들이 증식해가며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압축 성장’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엄청난 성취를 일구어냈다. 하지만 늘 길의 역사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역사와 행복하게 동거했던 것은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대항해 사람들이 저항의 깃발을 들어 올린 곳은 바로 길 위였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아프게 가로지르는 봉기와 혁명도 모두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마감하였다. 4.19의 경무대 앞이 그랬고, 80년 광주의 도청 앞 금남로 일대가 그러했으며, 87년 6월 항쟁의 서울시청 앞이 그러하였다. 불의와 부패에 대한 저항과 응징은 늘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잡아낸 대한민국의 90년대 이후 길은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길은 특유의 ‘정치성’을 급격히 탈색하고 자본주의 소비문화로 옷을 갈아입었다. 90년대 언론의 가십란을 장식했던 이른바 ‘야타족’은 대한민국 사회의 극적 변모와 그에 기인한‘길의 문화사회학적 변화’를 짚어볼 수 있게 해주는 키워드다. 그것은 80년대 중후반 이후 이른바 ‘3저 호황’이라는 엄청난 경제적 버블을 바탕으로 하고, 88년 올림픽을 문화적 도화선으로 해서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만개한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키치적 일면이었다. 사람들은 80년대, 길 위에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부르짖었던 역사를 땅에 파묻고 그 위에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좌판을 펼쳤다. 2000년대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모든 길 위를 가득 메운 붉은색의 쓰나미와 함께 시작되었다. 2002년 월드컵이라는, 비정치적이거나 최소한 ‘덜’ 정치적인 스포츠축제를 통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남녀와 노소, 빈부와 이념 등 모든 차이를 넘어서서 ‘둥근 공’을 매개로 해서 그야말로 하나의 ‘국민’이 되었다. 한반도의 전 역사를 통해 이 땅에 살아온 모든 사람이 그토록 일사불란하게 하나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 일사불란함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전체주의의 불길한 냄새를 맡을 정도로 그것은 놀랍도록 ‘거대한 일치’를 연출해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축제는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길을 떠나 각자 자신들의 사적 공간으로 돌아갔다. 다시, 길들은 자동차의 행렬로 가득 찼고, 거리는 크고 작은 자본들의 각축으로 분주하다. 오늘날 이처럼 심드렁한 ‘일성’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길들과 거리는 실상 어떠한가?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중단하고 빈약한 두다리를 떼어 몸소 보행에 나선다. 내가 길과 거리의 속살을 살피기 위해 오늘 걸어야 할 곳은 홍대 앞과 삼청동 옆 효자동 일대를 아우르는 ‘서촌’(西村) 길이다. 그 두곳은 각각 80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대표하고 상징하면서 시나브로 다가올 미래를 예시하고 있다.
홍대 앞을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똑 바로 걸어가면 15분 남짓이면 끝점에 도달할 수 있는 이 좁은 공간에 다양한 문화, 다양한 시대, 다양한 국적, 다양한 세대,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성적 취향 등이 일종의 불협화음을 빚어내며 혼거하고 있다. 고급과 대중, 명품과 키치, 오버와 언더그라운드…. 홍대 앞의 성지 중 한 곳인 예술시장 ‘프리마켓’이 자리 잡고 있는 놀이터에는 경로당이 당당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홍대 정문 앞 사거리 한 귀퉁이에 위치한 프리마켓은 상설시장이 아니다. 평시에는 놀이터이자 경로당으로 쓰이는 공간이 주말이 되면 액세서리며 온갖 생활 소품들이 향연을 펼치는 프리마켓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니까 100평이 조금 넘을 이 공간은 어린아이와 가장 늙은 세대, 그리고 피와 끼를 주체하기 어려운 젊은 영혼들이 흥겹게 동거하는 카니발적 공간이다. 이 좁은 공간에서 순수 미술과 조형 미술, 생활 공예와 급진적인 미술적 시도, 오래되고 낡은 세대와 새로운 세대, 정적인 미술과 동적인 음악 공연이 무정부적으로 어우러진다. 이 카니발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평화로우며, 번잡하지만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그러니까 이곳 놀이터는 홍대 앞의 현재를 증거하는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다.
프리마켓을 나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100여 미터를 내려오면 다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른바 ‘주차장길’로 들어서게 된다. 홍대 앞 주차장길이란 독막길(합정역에서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이름)발전소 사거리에서 놀이터 입구 수노래방 사거리까지, 또는 더 확장하여 홍대 정문 앞길에 이르는 공영주차장 좌우 도로를 가리킨다.
산울림소극장에서 프리마켓을 지나 극동방송국에 이르는 길이 홍대앞의 ‘올드 버전’, 또는 문화 생산 기지를 상징한다면, 주차장길은 ‘뉴 버전’, 요컨대 90년대 중후반 이후 급팽창한 클럽 문화와 패션, 그리고 유흥 문화를 대표한다.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는 두 길의 은유! 주차장길 좌우로 옷가게와 패션 소품점, 다양한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과 클럽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주차장길의 소비문화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수노래방’ 바로 옆으로 복합 문화 공간 ‘상상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홍대 앞에서 가장 유명한 유흥 공간과 동시대 가장 젊고 도전적인 문화 예술적 실험을 선뵈는 공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이 몹시 흥미롭다.
홍대 앞은 이렇게 동시대 소비 문화의 늪 속으로 일방적으로 빠져들지 않으면서 나름의 독자성과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건물과 건물을 구성하는 소품들 자체가 카페이면서 박물관인 ‘aA뮤지엄’,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미술적 시도들을 즐겨 소개하는 ‘스타일큐브 잔다리’, 대안 미술 공간 ‘루프’ 등은 그 살아 있는 증거들이다. 80년대 정치 문화적으로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길거리와 담벼락에 암각화를 그리듯 그림을 새겨넣기 시작한 지 30여 년, 홍대 앞은 그 모든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이렇게 새로운 실험들과 시도를 통해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꿈꾸려 하고 있다. 홍대 앞에서 273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려 광화문의 서쪽, 그러니까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의동·창성동 일대면서 통상적으로는 ‘서촌’으로 알려진 청와대길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 서촌 일대가 4~5년 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북촌의 덕을 입은 바가 크
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시작된 삼청동과 북촌 일대가 최근 지나치게 ‘자본화’, ‘상업화’하면서 임대료가 대폭 상승하고 문화적 분위기 또한 많이 퇴색함에 따라 일군의 문화·예술가들이 일종의 ‘대안적 공간’을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하나둘씩 늘기 시작한 미술 관련 전시 공간만도 20여 곳을 헤아릴 정도이다.
때로는 모래 위를 지나간 게걸음처럼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통의동과 창성동의 경계를 이루는 ‘영추문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가로로 늘어선 죄우 대로변으로 북카페 b612, 전시 공간 팔레드서울, 스튜디오 ‘워크룸’, 갤러리 ‘팩토리’, 카페 Mk2와 헌책방 가가린 등이 주욱 도열해 있다. 그리고 그 대로변을 끼고 한 발짝 더 골목길로 옮기면 자인제노, 쿤스트독 등의 전시 공간들이 존재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곳이 바로 통의동 · 창성동 일대의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고, 터줏대감들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여 전, 그러니까 2007년 무렵부터 몇몇 젊은 문화예술인이 삼청동의 비싼 임대료와 번다함을 피해 이곳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카페이자 빈티지 소품들을 전시해 놓은 Mk2의 주인장인 이종명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사진작가인 이씨의 작업실은 원래 삼청동 정독도서관 부근에 있었다. 주말이면 떼지어 몰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피해 이씨는 이삿짐을 쌌다. 이런 이씨의 내력과 사연은 영추문길 주변에 자리 잡은 다른 문화예술인들에게도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도도한 상업화의 물결에 마냥 떼밀리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 이들은 발랄한 상상력과 ‘발칙한’ 시도로 ‘상업주의’에 맞서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헌책방 ‘가가린’이다. 가가린은 상업적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공간이다. 태생부터가 그랬다. 마땅히 무엇을 하자고 결론을 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게를 임대했다. 빈 공간에 상업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Mk2와 워크룸과 팩토리, 그리고 건축가 서승모 씨가 급히 십시일반 돈을 보태 ‘선도입매’해버린 것이다. 돈을 들여 빈 공간을 임대했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헌책방이다. 이 책방에서 책을 팔기 위해서는 연회비 2만원(평생회원 5만원)을 먼저 불입해야 한다. 회원 가입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 가입은 안 되고 직접 책방에 들러 손수 이름을 써내야 한다. ‘고객 우선’의 시대에 웬 삐딱선인가 싶다. 심지어 가게문도 오후 12시 30분에 연다. “오전 나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란다. “그래도 하루 10여 권 정도는 나간다”는 책방 직원의 전언이다. 앞서 삼청동과 북촌이 그러했듯 이제는 ‘자본’의 거센 물결이 서촌 일대에 밀어닥치고 있다. 몇 개의 건물이 새롭게 올라가고 있고, 최근 부동산 불황에도 낡은 한옥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소문이다. 이곳은 동시대 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또 하나의 ‘막다른 골목’으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활로로 남을 것인가? 가을을 맞이한다는 아름다운 뜻의 영추문(迎秋門)을 지나며 공간과 사람의 앞날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긴다.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낸 자에게만 아름다운 가을은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젊은 그들에게 아름다운 가을이 영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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