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준선 이노션월드와이드 컨텐츠 전략본부 제휴마케팅팀 국장
큐레이터(Curator)의 원래 의미는 미술관과 박물관에 전시되는 작품을 기획, 즉 테마를 선정하여 작품을 선별하고 그 작품이 가진 가치와 의의를 설명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큐레이션>의 저자 스티브 로젠바움은 큐레이션을 "인간이 수집, 구성하는 대상에 인간의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서 가치를 높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큐레이션의 시대>의 저자인 사사키 도시나오는 "이미 존재하는 막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유용한 정보를 골라내어 수집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는 행위"로 진흙 속에 숨어 있는 진주를 발견하는 큐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콘텐츠 생산자와 수용자(혹은 소비자)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큐레이션 미디어 시대에는 콘텐츠 생산자가 동시에 수용자가 되는 쌍방향으로 콘텐츠가 유통되는 구조가 되며 자발적인 콘텐츠의 생성 및 수집, 배열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큐레이션 미디어 시대에는 기업이 주도하는 마케팅의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기업이 생각하는 의도적인 메시지를 사용자에게 반복적으로 전달하려고만 하면 고객들이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권위적인 브랜드보다는 누구나 참여하는 개방적인 브랜드로서 오히려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구축되고 있다.
201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매일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정보 더미 속에서 살아간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정보의 욕구 및 소비를 해소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신생 모바일 앱들을 마주한다. 그 수많은 모바일 앱들 중에 나에게 정말 필요한 앱은 무엇일까? 정보 과잉의 시대에 의미 있는 콘텐츠를 찾아내 시간을 보다 가치 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 니즈가 늘어나고 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미디어인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정보량이 증가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적 절약자(Cognitive Miser)가 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경향은 복잡한 의사결정을 회피하고, 쉽고 빠르게 판단하려는 판단 휴리스틱(Heuristic)을 일으킨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휴리스틱(Heuristic)이론이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판단해 선택하는 방법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어떤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판단할 때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기보다는 그 사건과 관련된 예를 기억으로부터 얼마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즉, 이성적인 판단 기제가 작용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 및 선호에 따라 감성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정보화 사회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변되는 소셜 미디어의 시대를 지나 큐레이션 미디어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큐레이션 미디어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개인화된 콘텐츠의 제공 및 맞춤 미디어의 등장이다. 과잉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택장애’를 돕는 문화 및 쇼핑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는 개인의 취향 분석을 통해 적절한 콘텐츠를 제공해 이용자의 충성도와 함께 매출 증대에도 기여한다.
국내 최초로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음식점을 추천하는 모바일 앱 ‘포크’.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가본 음식점을 평가하고 포크는 이 정보를 활용, 학습형 엔진 분석을 통해 사용자가 만족할 만한 음식점을 추첨해준다. 또한, 기존 제한적 맛집 추천에 불만을 가진 사용자들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으로 전국 40여만 개 음식점에 대한 공정한 순위도 제공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은 ‘마인드 마이닝(Mind Mining)’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글과 사진들을 분석해 사용자의 기분을 고려하여 그에 적절한 음악, 영화, 책 등을 추천하는 맞춤형 큐레이션 서비스가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IPTV 서비스 업체인 올레TV는 나만의 맞춤 편성관 ‘감성 큐레이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시청자 개개인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분석하고 선별해 매일 1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예능과 같은 프로그램을 TV 첫 화면에 띄워 준다. 모든 이용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됐던 TV화면이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는 큐레이터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식스센스> 나 <인셉션> 등 반전 있는 영화를 시청했다면 ‘잊히지 않는 영화 속 최고의 엔딩’이라는 테마가 형성되면서 <쇼생크 탈출>, <시네마 천국> 등을 추천하는 식이다.
둘째, 관계(Relationship) 중심에서 관심사(Interest) 중심으로 콘텐츠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2014년 11월 인스타그램은 세계적으로 월간 활동 이용자(MAU)가 3억 명을 넘어섰다. 이는 출시한 지 4년 만에 이룬 놀라운 결과며 트위터(2억 8천400만 명)를 뛰어넘는 수치다. 미국의 온라인 마케팅 전문업체 글로벌웹인덱스가 작년 11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일종의 ‘미니 블로그’ 성격을 띤 '텀블러'는 이용자가 120% 증가했으며 사진 공유 서비스인 '핀터레스트'는 111% 성장했다. 기존 SNS의 강자인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이용 동기인 효율적인 관계 형성 니즈가 과도한 개방형 정보에 짓눌려 피로와 부담을 느낀 이용자들의 대거 이동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광고 마케팅 플랫폼 전문기업 DMC미디어의 소셜 미디어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에는 친구, 지인과의 연락 및 교류를 위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응답이 76.2%를 차지했으나 2014년에는 58.4%로 떨어졌다. 반면 ‘뉴스, 이슈 등의 정보 획득’이 26.2%에서 45.7%로 ‘취미, 관심사 공유’가 18.7%에서 22.4%로 확대됐다.
최근 출시 후 일 년 만에 다운로드 500만 건을 기록한 피키캐스트. 스낵 컬쳐(웹툰, 웹 소설 등 10~15분 안팎의 짧은 시간 안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의미하며 스낵처럼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의 대표적인 콘텐츠 서비스로 자리 잡은 피키캐스트는, ‘우주의 얕은 재미’라는 슬로건 아래 바쁜 일상에서 하나를 깊게 읽기보다는 다양한 것을 빨리, 더 많이 보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관심사를 망라한 콘텐츠 뷔페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피키캐스트 골라보기 메뉴에서 ‘세상의 모든 이슈’, ‘꿀팁의 전당’, ‘먹컷리스트’, ‘깨알지식 피키백과’, ‘썸에서 결혼까지’ 등의 카테고리를 통해 이용자 개개인의 선호도와 취향에 따라 빠르고 쉽게 콘텐츠를 찾을 수 있다.
셋째, 단순히 콘텐츠 플랫폼을 뛰어 넘어 광고 미디어 또는 커머스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NBT 파트너스의 스마트폰 첫 화면 플랫폼 ‘캐시슬라이드’는 콘텐츠 큐레이션을 통해 광고주와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하고 있다. 캐시슬라이드는 잠금 화면에 광고, 뉴스 등 콘텐츠를 노출하고 이를 소비하는 사용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리워드 해주는 모바일 서비스다. 사용자의 성별, 연령 등 기본적인 데이터와 과거 콘텐츠 소비 이력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맞춤 노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대 여성 사용자에게는 패션, 유통 관련 콘텐츠를, 10대 남성에게는 게임 콘텐츠를 주로 노출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단순히 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제공에 그치지 않고 정확한 타겟팅으로 광고를 노출하는 미디어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한편 큐레이션 서비스는 맞춤형 상품 정보의 제공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커머스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 커머스 1.0의 ‘오픈마켓’을 시작으로 그루폰, 쿠팡과 같은 커머스 2.0의 ‘소셜커머스’까지 국내외 커머스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는 커머스 3.0이라 불리는 ‘큐레이션 커머스’ 시장이 새로운 커머스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커머스 1.0 ‘오픈마켓’은 수많은 입점 상점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의 형태를 띠었으며, 커머스 2.0인 ‘소셜 커머스’는 SNS를 기반으로 형성된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공동구매 형태를 지향하면서 최저가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 소셜 커머스의 대표 주자격인 ‘그루폰’의 기업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추세인 반면에 ‘FANCY’, ‘WANELO’, ‘미미박스’ 등과 같은 ‘큐레이션 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며 커머스 3.0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온라인 뷰티큐레이션 서비스 브랜드인 미미박스는 상품 추천을 넘어 정기적으로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미박스는 사용자들에게 구독 가입 시 작성한 프로필과 테마를 기반으로 마치 매월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것처럼 상품박스를 정기적으로 배송해 주는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넘버원을 넘어 온리원으로’라는 부제가 달린 도서 <디퍼런트(Different)>를 보면 “전문가들은 특정한 필터를 통해 수많은 제품들을 신속하게 분류해 낼 수 있는 반면, 초보자들에겐 필터가 아예 없다. 전문가들은 직관적으로 제품들을 검색하는 반면, 초보자들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한다. 초보자들에게 쇼핑은 단순한 구매 행위라기보다, 고도의 지적 활동인 것이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복잡한 정보의 밀림 속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은 매일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단순한 선택에서 연인을 위한 화이트데이 선물 고르기 그리고 노후 생활을 준비하는 재테크의 방법론까지 그 어느 하나도 쉬운 결정이 없다. 주위에 정보는 넘쳐 나나 나에게 맞는 정보를 선별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작업이다.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장애’, 즉 ‘햄릿증후군’에 걸린 현대인들은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큐레이션된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의사 결정에서 기업 주도 마케팅의 효과는 감소하고 큐레이션된 정보를 생성한 지인들의 추천이 제품 구매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핀터레스트 계정 보유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21%에 이르는 이용자들이 핀터레스트에서 본 아이템을 실제로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는 등 핀터레스트를 통해 추천된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 또한 높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에 존재하던 정보를 얼마나 의미 있게 가공하고 편집하여 새로운 차별적 가치를 부여하느냐가 영역 없는 무한경쟁 시대의 생존법칙으로 등장했다. 경쟁하면 경쟁할수록 서로를 닮아가는 역설의 법칙 하에 진정한 차별화를 위한 큐레이션 콘텐츠(미디어)를 창조하는 것이 새로운 경쟁 패러다임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는 길이다.
[Media Insight]소셜 미디어에서 큐레이션 미디어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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