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은 미련이나 미만으로 남기 쉽다. 확인할 수 없는 장롱 속 금송아지처럼 확인할 수 없는 과거에 묻혀 '나도 한땐 이랬노라'며 ?잘 미화되는 인생의 글리셰로 남기 쉽다. 하지만 어떤 이는, 하지 못한 일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진다고 말한다. 뒤돌아보며 후회하는 대신 아쉬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진취적인 마인드, 광고 6팀 한보현 차장의 목소리는 그런 그의 마인드와 꼭 닮았다.
‘밥상론’에 공감하다
사실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2009 대한민국 광고대상’ 거의 전 부문에 오르고 2009 Best Idea Person 수상까지, 한보현 차장의 연말은 지난 1년을 압축한 듯 알차게 바빴다.
잠깐의 틈을 내기도 어려웠던 그를 만나려면 디지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메일로 오간 질문지와 몇 번의 짧은 통화, 온라인과 유선에 접속해야 겨우 접촉할 수 있었다. 활자로 전해진 텍스트와 팩트뿐, 가장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한다는 시각 정보는 배제됐다.
대신 그의 인상을 뚜렷하게 한 것은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21세기하고도 1/10이 넘어가는 세밑이라며 휘청거릴 그 시각에도 여전히 업무를 놓지 못한 그의 목소리는 하루를 여는 아침인사처럼 쾌활했다.
거침없었지만 시간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한 겸연쩍음이 묻어났다. 예의를 아는 사람 같았다.
Best Idea Person 수상 소감으로 그는 놀라울 뿐이라고 답했다. 수상이 의외였던 것일까하는 의아함도 잠시.
이어진 활자는 다른 누군가의 감정에 100%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답하고 있었다.
“황정민 씨의 그 유명한 수상소감 있잖아요.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는 말, 저 역시 다른 분들의 역할에 기대어 상을 받았을 뿐입니다.”
겸손한 소감 뒤로 길고 긴‘땡스 투’가 이어졌다. 본부장님, 팀장님, 팀원들, 바이럴을 책임진 인터랙티브팀원들, 사나흘 걸려야 마땅할 200개 가까운 방송용 소재 교체를 하루만에 처리한 전파미디어팀 미녀삼총사 등, KBS 연예대상의 김소연 수상소감 못지 않았다.
대면 인터뷰였다면 그도 그렇게 속사포처럼 말했을까?
감사해야 할 사람이 많은 만큼 축하해준 사람도 많았다. 급성 장염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와중에도 기어코 축하를 전한 동료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축하를 받고 싶었던 이는 바로 산체스, 업무 분장이나 경계 없이 4년째 KTF와 kt 캠페인을 함께 책임지며 동고동락(同苦同?)해왔으니 수상의 기쁨도 가장 내밀하게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빅 캠페인의 필요조건은 열정과 순발력
kt의 QOOK, olleh kt 캠페인은 지난 해 광고대상에서 인터넷부문 금상, 라디오부문 은상도 모자라 TV?인쇄?SP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엄청난 제작 편수가 소비자에게 가닿기까지 한보현 차장과 동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묻지 않아도 알 법하다.
QOOK 론칭은 모두가 집에도 못 가고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준비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인고의 시간을 거친 웅녀와는 달리 그들의 칩거는 길지 않았다.
“QOOK 론칭은 상상을 초월한 스피드로 진행됐습니다. OT부터 시안 제시, 편집 등 거의 2주만에 모든 일정이 정리 됐으니까요.”
장애물을 뛰어넘은 것도 스피드의 힘이었다. 다음 항공지도에 QOOK 로고를 새겨서 이슈를 만들던 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난 것.
“ 다음 스카이뷰도 구글 어스도 업데이트를 1~2년에 한 번 정도밖에 안 한다더군요. 거대한 현수막 등을 설치한 후 인공위성으로 촬영을 하려던 원래 계획은 접을 수밖에 없었죠. 대신‘합성’이라는 초강경카드를 들고, 다음 측을 설득해서 5일 만에 뚝딱뚝딱 처리했습니다.”
순발력과 재치는 10년간 대부분의 업종을 두루 경험한 광고 이력에서 나온 것일 터. 학습지에서 아파트까지, 화장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을 경험했다는 그는 좋은 캠페인을 만드는 건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열정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업종의 구분이나 클라이언트 규모와는 상관없는‘빅’캠페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빅 캠페인의 필요조건이 빅 클라이언트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10년 세월의 힘 아닐까 싶어요.”
평범함에서 독특함을 찾아내는 애정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겨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꼽는다. 그가 꼽은 대상은 바로 그의 창조물이었다.
“18개월 된 우리 아이에게 아빠의 모습을, 아빠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의 2세, 그리고 그의 사진과 광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타임캡슐이 있다면 아이의 사진들과, 그가 찍은 사진들과, 그가 만든 광고 쇼릴(Showreel)을 묻고 싶다고 했다.
“가장 평범한 피사체에서 가장 독특한 피사물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사진전시회를여는게작은소원이에요.”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사진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것에서 빛나는 찰나를 얻으려는 그는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셔터를 눌러야 할 것이다.
열정을 담아낸 광고와는 또 다를 그의 사진이 세월 속으로 묻히기 전, 피사체를 향한 애정으로 잡아낸 빛나는 찰나를 마주할 일이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