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I 시인
대머리 사장님은 주로 베레모를 쓰고 다녔지만 체면을 앞세워 자신의 관심사를 숨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한 번은 갑자기 사장실 밖으로 나오더니“우리나라는 여자들 다이어트와 남자들 대머리 때문에다 망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열 명 남짓의 출판사 직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인즉슨, 대머리 제품과 다이어트 제품이 나올 때는 홈쇼핑 광고 하단 전화번호를 아무리 눌러도 계속 통화 중만 걸린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머리가 좀 나는 것 같은데 이것저것 쓰다 보니 어느 것이 효과를 봤는지 통 모르겠단 말이야.”하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유쾌한 성향인 줄이야 짧은 회사생활로도 간파한 바지만, 출근하자마자 말단인 내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머리카락을 만질 때에는, 괜히 사장님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씀에 조바심이 났다.
“ 야, 넌 젊은 놈이 머리가 이게 뭐야? 노랗게 물이라도 좀 들여봐!”일명 학사장교 머리를 고집했던 내가 답답해보인다는 게 말씀의 이유였다지만, 나는 유난히 숱 많은 내 머리에 대한 곡진한 부러움이었을 거라고짐작했다.
홍대 앞에 살면서도 나는 그간 찢어진 청바지도 빨주노초파남보의 머리색도‘얼레? 이것 봐라’하며 꼴사나워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장님의 그 한 말씀에 마음이 동했다. 당시 유행도 유행이었지만 젊을 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나 하는 마음이었다.
퇴근길에 염색약을 장만해 룸메이트와 서로 물을 들여 주었고 드디어 나도 노랑머리를 갖게 되었다. 효과는 예상 밖으로 엄청났다.
명절 고향집에서 불 싸지르겠다며 휘발유통을 들고 따라다닌 아버지도 그 효과의 부분이었지만, 거리에 오가는 입술의 피어싱까지 멋있어 보였고, 바이크 탄 젊은이들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불량해보이던 뒤에 탄 짧은 가죽치마까지 예뻐보였다.
그것은 인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인정하게 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 축복일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를 구성하는 작은 변화 하나가 내가 사는 세계를 더 넓혀줄 수 있고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그것이 바로 생각을 뒤집는 일은 아닐까?
오래간만에 들른 전 회사의 사장님은 덥수룩한 가발 하나를 장만하여 착용하고 계셨다. “아니, 사장님! 이왕 가발을 하시려면 레게머리로 하셨어야죠. 아직 젊으신데 이런 헤어스타일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그리고 나는 베레모를 하나 얻어왔다.
“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