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가슴 설레는 사랑을 꿈꾼다. 입학하자마자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학생도, 내일을 잊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도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본능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 모든 이의 가슴속 본능을 자극하는 광고가 있으니 바로 레쓰비 광고다.
글 ㅣ 정다원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6팀 사원)
2010년에도 통용되는 ‘저, 이번에 내려요’의 미학.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두 남녀가 서로를 흘금거린다. 마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여자의 손에는 채온기가 가시지 않은 레쓰비가 들려 있다. 수줍게 시선을 교차하던 두 남녀, 그리고 레쓰비의 마지막 한 방울을 삼킨 여자가 드디어 결심한 듯 입을 뗀다.
“저, 이번에 내려요.”
여기서 그냥 끝나면 좀 슬픈 이야기가 돼버린다. 하지만 다급히 따라 내리는 남자. 따뜻해 보이는 자판기 앞에서 뒤이어 남자의 고백이 이어진다.
“전 두 정거장이나 지났어요.”
1997년을 강타한 유행어 ‘저 이번에 내려요’를 선보인 레쓰비 광고다. ‘Let’s be together’의 약자인 ‘Let’s be’의 이미지는 이 광고 한 편으로 멋들어지게 만들어졌다. 이 광고는 커피 원두의 향긋함을 강조하지도, 토속적인 복장을 한 콜롬비아인이 등장해 제품의 오리지널리티에 도장을 찍지도 않는다. 단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30초의 짧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핑크빛 판타지를 자극할 뿐이다.
레쓰비의 달콤한 맛과 풍부한 향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데도 이 광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캔 커피=레쓰비’라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너도나도 광고 속 여주인공의 대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레쓰비는 이 광고를 통해 누구나 꿈꾸는 사랑 이야기를 녹여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큰 공감을 얻는다. 가끔 너무 가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누구나 그런 사랑을 꿈꾸기 때문이다. 레쓰비는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가려운 환상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누구나 레쓰비 광고 속 주인공을 꿈꾼다
광고가 온에어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레쓰비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레쓰비와 함께 바쁜 일상 중에서도 잠깐의 낭만을 즐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동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근처 대학교 도서관에 몰래 가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대학생 언니 오빠들에게는 상당히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근처 독서실이 문을 닫아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는 우리에게는 24시간 동안 최적의 공부 환경을 제공하는 대학교 도서관이야말로 최후의 보루이자 황금 알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새벽까지 남녀가 뒤엉켜 있는 그곳에서 나는 여과 없이 멋쟁이 대학생 오빠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항상 두꺼운 책을 안고 다니던 그는 풋내 나는 내 또래 남자애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가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뱉어낼 때마다 그 뜨거운 숨에 나 자신이 녹아버리는 듯했다. 거의 한 달 동안 그 오빠 주위만 맴돌다가 결국 생각해낸 방법이 ‘책상에 몰래 캔 커피=레쓰비 갖다 놓기’였다.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광고 속 멘트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레쓰비 광고.
1997년 대홍기획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귀여운 고백을
통해 풋풋한 사랑의 설렘을 전달하며, 커피를 ‘손에 잡히는 사랑’으로 표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매일 머릿속으로 레쓰비의 광고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매일 타는 버스 안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그도 나를 흘금거리며 쳐다보진 않았지만 나와 그 멋쟁이 오빠가 도서관 입구에 있는 자판기 앞에 서서 쑥스럽게 통성명하는 장면을 몇 번이고 재생했다.
하지만 나 홀로 감독 놀이도 얼마 뒤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소란스러워진 도서관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대학 측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 오빠를 보겠다고 도서관 앞으로 몇 번 찾아가기도 했지만, 몇 시간씩 추위에 떨며 님을 기다릴 만큼 내 마음은 성숙하지 않았다. 결국 나의 동경어린 설렘은 짧게 끝나버렸지만, 추운 겨울에 따뜻한 레쓰비를 가볍게 쥘 때면 나도 모르게 그때 생각이 나곤 한다. 어느새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레쓰비에 담았기 때문이다.
레쓰비는 지금까지도 잘 만들어진 광고로 꾸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캔 커피 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잡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 온에어된 ‘선배, 나 열나는 것 같아’ 편은 고스란히 레쓰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따뜻한 레쓰비로 얼굴을 데우면서 꾀병을 부리는 후배, 그 마음을 짐짓 아는 척 모르는 척하는 훈남 선배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청춘 남녀의 캠퍼스 낭만에 불을 댕겼다.
그 누구도 앙큼한 후배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고 전체를 감싸는 가수 이문세의 부드러운 내레이션처럼 내심 그녀를 응원한다. 그리고 바란다. 내게도 그런 일이벌어지기를….
어느새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다시 한 번 레쓰비의 따끈한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계절이 돌아왔다. 가슴 설레는 이야기로 전 국민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레쓰비가 다음에는 어떤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말을 걸지 기대된다.
좋은 광고는 많은 사람에게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 공감의 파도는 쉽게 가시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믿는다. 레쓰비가 다시 한 번 큰 공감의 파도를 일으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