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이다. 선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쪽에서야 대목을 보는 한 해라지만 언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흑색비방과 폭로로 얼룩질 정치판을 또 다시 보게 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말 방송을 개시한 종편채널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성을 가 중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2011년 11월 29일 헌법재판소가 트위터, UCC, 블로그 등을 통한 선거운동 금지조항 위헌판정으로 인하여 모바일 매체를 통한 선거 정보의 양(量)이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특히 모바일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의 허용은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집단, 집단 대 집단 간 커뮤니케이션이 대중매체를 통하지 않고 개인매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갖게 해준다.
모바일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 허용이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 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주로 젊은 유권자들이 모바일 매체를 사용하는 상황이니까 야당에게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는 감성적 진단은 내려지고 있다. 문제는 어느 쪽에 유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모바일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한계점이 선거운동에까지 연장되어 모바일 공간이 불공정 시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의 구조적 문제가 불공정 보도의 원인
한국 사회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실현을 위하여 중앙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방법 및 기회의 범위를 넘어서는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다. 유권자와의 직접적인 접촉보다는 대중매체를 통한 접촉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제도화하였다. 과거의 합동토론회 대신에 TV토론회를 권장하고 전파와 지면을 통한 선거광고 및 연설을 권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후보자간 형평성과 기계적인 중립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결과적으로 제도가 현실을 과도하게 압도하여제도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례로 모든 단위의 선거에서 TV토론을 법제화하다보니 TV토론 과잉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TV토론은 또 하나의 제도 내지는 관행으로 정착되고 말았다. 현실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거리유세 및 차량유세 또한 유권자들에게 혼잡과 소음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공약을 제대로 알리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기회는 차단되었다.
여기에는 TV토론을 중계하고 선거 관련 보도를 하는 지상파방송 채널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하락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현재도 KBS와 MBC 노조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의 사장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방송사들이 보도 태도를 달리해왔기 때문에 선거보도를 둘러싼 공정성 시비는 정권이 달라져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신문사는 선거운동원 역할 자처하고 나서
공직선거법 제69조와 제70조는 국회의원 후보와 대통령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신문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일정한 정도의 선거광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선거철이 돌아오면 후보들의 선거광고 유치를 위해 조직 총동원 체제를 갖추게 된다. 재정적으로 생존위기에 놓인 신문사들에게 정의에 기반한 도덕적 판단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지만, 그래도 해당 지역 후보자들의 공약을 객관적으로 비교·검토하여 유권자들의 판단을 도와야 한다는 본질적인 역할은 외면한 체 수익증대만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 유권자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많은 지역 신문사들은 후보들의 홍보기사를 도맡아 써주는 대신 후보(정당)들의 광고를 독점하고 있어서 이들에게 지역 공론장으로서의 기대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신문이 동시에 존재하는 수도권에서야 양극단에 있는 신문사의 역할들이 서로 상쇄되어 어느 한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구도가 형성되는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지만, 강원·충청·영남·호남 지역에서의 지역신문들은 오히려 기존 정치의 틀을 좀 더 공고히 하고 변화의 바람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신문이 해당 지역 유권자의 정치성향을 거스르는 보도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지역 언론 스스로 지역 내에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권력 세력과 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012년 한 해에도 지역신문들은 지역 이기주의적 보도, 지역 주류 정당 중심의 보도, 논리적인 분석보다는 감성적 주장 위주의 보도, 경마중계식 보도, 정책위주의 보도보다는 인물중심의 보도로 일관할 것으로 보인다.
종편채널은 선거보도의 편향성을 가속화시켜
지난 해 말부터 방송을 시작한 종합편성채널 또한 2012년 선거보도에 있어서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현재까지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고 평가받지 못하지만 조·중·동 신문이 주축이 되는 세 개 채널과 보수계열의 MBN을 통한 보도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 것인가를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지상파와 케이블에 익숙해 있던 시대에 인터넷의 등장은 권위와 위계질서 파괴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고 기존 체제를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인터넷 댓글들이 어떤 경우에는 언론사의 기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대중을 광장으로 모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여기에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매체의 도입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한국의 보수 여론을 대변하는 조·중·동 신문이 기존의 영역을 넘어 전파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종편채널은 현실이 되었고 비록 상업성 증대를 통해 살 길을 모색하는 신세는 되었지만 각종 기획물 및 선거보도에 묻어나는 내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능적으로는 지상파와 같은 종합편성채널이지만 지상파와는 다른 규제를 받고 있어서 2012년 한 해 종편채널이 어떤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보도 할 것인가와 관련한 우려가 결코 기우(奇遇)만은 아닐 것이다.
모바일 통한 선거운동 허용은 공적감시의 확대를 의미
2011년 11월 29일 헌법재판소가 트위터, UCC, 블로그 등을 통해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 또는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녹음테이프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게재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대해 한정 위헌 판정을 내렸다.
또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2년 1월 인터넷을 통한 사전 선고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254조2항의 적용을 보류하기로 하고, 유권자와 선거 관계자의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 방법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는 언제든지 인터넷 홈페이지(포털사이트, 미니 홈페이지, 블로그 등) 또는 그 게시판·대화방 등에 글이나 동영상 등 정보를 게시하거나 전자우편(이메일, SNS, 모바일메신저 등)을 전송하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공직선거법 제254조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결정했다. 전제조건이 붙었지만 개인 모바일 미디어를통한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셈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제도 속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적어도 선거운동에 관해서만은 사적영역에 존재하던 개인적 정보에 대해 공적감시가 확대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카카오톡이나 SNS를 통한 댓글이나 메시지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우연히 자신을 노출시켰는데 그것이 단서가 되어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집단적인 공격을 받거나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받기도 하고 명예가 훼손되기도 하며 프라이버시가 침범받기도 한다. ‘초연결사회 (hyperconnectivity)’ 속에서 모바일 개인 매체는 오히려 연결성을 강화하고 개인을 고립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불행한 얘기지만 SNS에 남긴 개인 메시지는 손가락을 떠나는 순간 자생력을 지닌 존재처럼 가상공간을 둥둥 떠다니게 된다.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없다. 자신이 만든 메시지라도 더 이상 자신에게 통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진지한 생각 없이 재미로 올린 정보라고 봐주는 법도 없다. 이렇게 남긴 정보는 자신의 세대(世代)를 넘어 다음 세대로 전수되기도 하고 영원히 디지털유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 수준에서 모바일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의 범위를 충분히 숙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정후보에 대한 좋고 나쁨 차원을 넘어 후보에 대한 사실를 매개하는 순간 불공정시비의 당사자가 될 수 있고, 장난삼아 올린 인증샷 한 컷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개인이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른 정보를 퍼나르거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정보를 각색하는 경우에는 당장 발원지를 추적받게 되며 법적 책임을 묻게 될 수도 있다.
모바일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라는 전제를 달고 있기 때문에 일반 유권자들은 이러한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방법상에 있어서도 일정한 제한조건이 있다. 2012년 한 해에는 모바일을 통한 선거운동이 처음 허용되는 만큼 선거 과정에서 이를 통한 시비가 적지 않게 발생할 것이며, 당연히 모바일 매체를 통해 오가는 정보에 대한 감시의 눈길도 매서워질 것이다.
선거보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
선거제도가 현실을 규제하지 못하고 현실이 제도에 의해 식민화되는 상황에서 2012년 한 해는 다른 어느 때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언론사들은 언론사대로 자신들의 살길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선거보도에 임하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언론들을 지렛대로 지신의 정치적 기회를 확장하려 한다. 누가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보도의 공정성을 판단할 것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제4부라 할 수 있는 언론매체가 이러한 역할을 떠맡는 것0이 당연한데, 현재처럼 언론 스스로가 권력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누가 이러한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 커뮤니케이션 양(量)적 증가는 질(質)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인가. 제도와 정책의 개입 없이도 변증법적 작동원리에 의해 보다 나은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단은 지켜보겠지만 선거의 바람이 지나간 뒷자리에 남을 혼란과 후유증이 벌써부터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