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실장, CDR 어소시에이츠, lkj@cdr.co.kr
‘모든 인식은 눈에서 시작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인식 시키기 위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복잡한 경쟁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그 경쟁 상황의 돌파구로 브랜드 개발이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이미 오래이다. 이제 기업들은 브랜드 또는 기업을 알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길 원하고 있으며,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무형의 개념인 브랜드를 유형의 시각적 이미지로 개발하여 브랜드와 기업의 실체를 소비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진화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란, 일반적으로 CI(Corporate identity)라고 통용되고 있으며, 개인 또는 단체나 기업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우거나 여러 형태의 이미지를 통합하고, 그 이미지와 체계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과정 또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말하는 ‘아이덴티티’란 주로 시각적인 대상을 중심에 둔 그래픽, 영상, 제품 디자인 등에 기술적으로 적용 또는 전개하는 디자인 체계를 말한다. (출처: 교육인적자원부, 시각디자인실무, 국직업능력개발원, 1999, p160)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기업의 경영 전략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시초는 1907년 독일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가 디자인한 AEG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 산업화와 글로벌화 등 시대의 변화에 맞춰 아이덴티티 디자인도 진화해 가고 있으며, 과거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기업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권위적인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보다 친근하고 감성적인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의 존재를 알리는 것 이상의 소비자와 교감할 수 있는 도구로써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역할이 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바탕에는 인터넷 및 뉴미디어와 같은 네트워크 기반 기술의 발달이 있다.
즉, 과거의 기업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는 기업의 위상 전달이 효과적이었다면, 지금의 뉴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기업에 의해서 개발되지만 그 완성은 소비자에 의해서 이루어 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패러다임
1960년대 : 준비기
1960년대 우리나라는 전란 후 새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으며, 강력한 정부주도 아래 근대화와 고도 성장을 달성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관한 인식이 파급되지 못한 시점으로 단지 기업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으로서의 시각화(visual) 작업 수준이었으며, 정보의 양이 많지 않아 조직체의 업종을 단편적으로 나타내는 연관성 있는 사물이나 사상의 형상화가 대부분이었다.
1970년대 : 도입기
1970년대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기업이 설립되던 시기로 기업의 존재를 증명하는 미적 표현의 수단으로써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도입되었다. 특히, 기업의 모든 디자인 활동을 서로 통일적으로 조정하고 통합시켜 기업의 이념, 성격, 목표 등을 정확히 표현하여 하나의 경영전략으로 승화시키려는 일본의 DECOMAS(Design Coordination as Management Strategy)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출처: 손일권, 브랜드 아이덴티티 p267) 디자인 표현 기법에 있어서도 일본의 디자인 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아 주로 기하학적이고 규칙적인 선과 도형의 추상적인 심볼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1980년대 : 성장기
1980년대는 88올림픽 전후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세계화가 시작된 시기로, 다양한 기업에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개발되었다. 특히, 금융권에서 CI를 활발하게 도입하였다. 하지만 디자인 스타일에 있어서는 70년대와 큰 차이가 없었으며, 선과 면의 교차된 이미지에서 오는 구조적이고 옵티컬(optical)적인 이미지로 주로 표현되었다.
1990년대 : 변화기, 혼란기
1990년대는 본격적으로 마케팅 전략 차원으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개발된 시기이다. 기존까지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기업의 위상과 존재를 알리기 위한 미적 상징물 개념이 강하여 주로 심볼마크 형태로 개발되었다면, 90년대는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고려하여 기업 명칭을 인식시키기 용이한 워드마크 개발이 두드러졌다. 특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워드마크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는 세계화 시장에서 기업이 하나의 브랜드로써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이 별 세 개로 이루어진 심볼을 버리고 ‘SAMSUNG’이라는 문자를 강조한 워드마크로 급진적으로 변화된 사례를 들 수 있다. 그 밖에 90년대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일본풍의 디자인에서 탈피하여 미국과 유럽의 감성적인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 디자인적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2000년대 : 감성의 시대, 세계화 시대
2000년대 IT혁명은 사회 모든 분야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모바일과 SNS와 같은 뉴미디어로 인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되었으며, 현대인은 24시간 항상 연결된 삶을 살아 가고 있다. 연결됨으로 인해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집단친밀감(collective intimacy)으로 까지 발전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모든 활동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아이덴티티 디자인 역시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소비자에게 친밀감을 주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높일 수 있는 감성적인 이미지로의 개발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트렌드 아닌 트렌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있어서 트렌드는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는 테크놀로지 기반의 트렌드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서 새롭게 표현이 가능해진 트렌드이다. 최근의 가변적(flexible)디자인과 입체적 표현, 다양한 컬러 표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비교 대상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나타나는 상대적 개념의 트렌드로 모던과 레트로, 간결함과 다양함 등 상반된 개념의 트렌드가 공존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 정보가 부족하고 매체가 한정된 시기에는 아이덴티티디자인의 트렌드가 보다 뚜렷하였고 트렌드가주도하는 기간도 길었다. 현재는 다양한 트렌드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트렌드의 사이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트렌드가 아닌 트렌드로써 활용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기업들은 단순히 트렌드를 좇는 디자인이 아닌 기업의 정체성(Identity)을 잘반영할 수 있는 방향 안에서 트렌드를 고민해 봐야 한다.
가변적(Flexible) 디자인의 다양한 시도
최근의 가장 큰 트렌드는 가변적 디자인에 있다. 가변적 디자인은 다양한 소비자 접점(touch point)에서 획일화된 이미지가 아닌 다양하게 변화되는 이미지를 적용하여, 소비자에게 동적이고 신선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소비자와의 감성적인 교류가 중요해짐에 따라서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며, 다양한 시도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간결함에서 다양함까지
간결한 디자인은 늘 매력적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같이간결함에서 오히려 강렬함이 전달되며, 디자인적용 측면에서도 간결한 디자인은 매력적이다.간결한 디자인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면 그 와는 반대로 다양한 컬러 및 패턴을 활용한 디자인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요소
가 많은 디자인의 적용성 문제와 컬러 구현의 문제로 지양되었던 방식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입체적인 이미지에서 수채화 기법까지
뉴미디어가 확산됨에 따라서 뉴미디어에 어울리는 입체적 이미지의 디자인이 부각되고 있다. 입체적 이미지의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디지털 감성과 첨단의 세련된 이미지를 전달한다. 입체적 이미지가 첨단의 감성을 전달한다면 수채화처럼 직접 손으로 그린 듯한 이미지는 소비자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 서로 상반되는 디자인 트렌드가 공존한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것이며, 기업 이 다양한 소비자의 감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소비자와의 교감을 위한 디자인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오늘의새로운 디자인은 내일의 평범한 디자인이 될 수 있다. 외형적인 트렌드만 좇는 디자인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트렌드의 핵심을 꿰뚫어 봐야 한다. 트렌드의 핵심은 바로 소비자와 깊은 교감에 있으며, 이제는 기업과 소비자가 교감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디자인을 바라 봐야 한다. 소비자와 교감하기 위해서는 외형만 좋은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에서 스토리를전달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아이덴티티로 구축될 수 있도록 일관되고 종합적인 이미지로 완성되어야 한다. 일관성이라는 것은 획일화된 디자인의 반복적인 적용이 아닌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이해하고 소비자 접점의 매체 특성을 고려한 유기적인 디자인 시스템을 말한다. 또한 그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소비자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인식하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되고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참고문헌]
손일권, 브랜드 아이덴티티
로고라운지, www.logolounge.com
변증법적 분석을 통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방향 제시 _ 손주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