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유연하게, 리퀴드 소비
대홍기획 기사입력 2023.06.27 12:00 조회 2532
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맥락 을 팔아라><어바웃 브랜딩> 외 다수.


얼마 전 직장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사진이 있었으니 바로 리모트워크 공간인 '맹그로브 고성'이 담긴 컷이다.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노트북을 켜고 그날의 일을 시작하는 모습, 바다에 비친 노을을 바라보며 그룹 요가를 하는 모습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틀에 박힌 패턴으로 일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최근 소비 트렌드의 중요한 가치는 ‘유연함’이다. ‘공유' '구독' 혹은 '렌탈'이라는 타이틀의 다양한 서비스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보와 트렌드를 구독하고, 공기청정기와 침대를 렌탈하며, 자동차를 사는 대신 차량 공 유 플랫폼을 활용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삶의 방식'을 구독하려 한다. 이처럼 소유가 아닌 공유를 중시하고 충성도보 다 단기적 혜택에 따라 움직이는 유동적인 소비경향을 '리퀴드(Liquid) 소비'라 부른다.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마음을 따라가며 이들의 취향과 다음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이제 모든 기업의 숙제가 됐다. 우리의 소비는 얼마나 유연해지고 있을까? 브랜드는 리퀴드 소비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맹그로브 고성. 리모트 워커를 위해 워크 라운지, 개인 공간, 명상 등이 준비돼 있다. / 출처 mangrove.city


공유경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리퀴드 소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발전해 온 공유경제, 플랫폼, 구독경제를 통해 서서히 자리 잡았다. 소유 가 필요 없다는 생각은 MZ세대 주택 보유 비율의 하락, 운전면허증 취득 비율 감소 등에서도 선명하게 파악된다. 무 엇보다 이들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가치소비는 다른 한 방향으로의 리퀴드 소비를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특 히 MZ세대가 지향하는 탈물질주의 시대에는 제품이 행복을 상징하지 않는다. 소유 자체가 주는 기쁨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은 무엇을 소비할까? 과거 우리는 이를 '경험'이라 말했다. 제품이나 소유보다 경험을 택한다고.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경험을 총체화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잘 기획된 공간에서 브랜드의 철학과 감도를 충분히 경 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전히 중요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경험의 주제가 '라이프스타일'로 점차 집중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제 팔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바람직한 가치관, 완성도 높은 라이프스타일, 진짜를 알아보는 안목, 물건의 감도를 구별하고 누릴 줄 아는 취향만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 새로운 경험이 되거나, 취향에 맞거나, 내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주거나, 이슈가 되는 품목은 빠르게 확산되고 소비된다.


발 빠른 대응보다 중요한 강점설계와 에코시스템

그렇다면 리퀴드 소비에 대응하는 브랜드는 그저 끊임없이 치고 빠지는 이른바 '숏케팅'에 몰두해야 할까? 소비자들 이 빠르게 움직이고 그 방향도 모호할 때 중요한 것은 강점 설계다. 브랜드 충성도가 낮은 시대에도 소비자의 선택 에 있어 의미 있는 자리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브랜드가 강점을 보유하고 있을 때다.


 
(좌) 충성 고객의 새로운 상품군 동반 구매를 노리는 마켓컬리는 뷰티컬리로 카테고리를 강화했다 (우) 친환경, 유기농 식품 전문 플랫폼 오아시스는 재구매율 80~90%에 달하는 높은 고객 충성도를 유지한다. / 출처 kurly.com, oasis.co.kr


마켓컬리를 선호했지만 난각번호 1번 계란이 저렴한 오아시스를 발견한 순간 구매의 중심과 루틴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럴 때 변심한 고객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것 역시 신선제품뿐 아니라 뷰티까지 확장된 컬리만의 강점이다. 과거 에는 규모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고객 의사 결정의 에코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싸움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와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유기적 트래픽을 모아야 한다. 소비자의 의사결 정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이뤄진다. 단지 규모가 큰 매체, 영향력이 지대한 인물을 통해서 만이 아니라 의외의 커뮤니티, 인물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변화된 에코시스템에서는 브랜드뿐 아니라 이와 연계된 다른 플레이어들이 중요하고 이들이 뭘 하느냐에 따라 내 고객도 달라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확실한 경험과 리텐션의 이유를 제공하라

무브먼트랩은 감각적인 공간 운영을 통해 가구 구독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다. 총 4개의 플래그십 매장 중 부산, 의왕점은 구매와 상관없이 놀러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6개월마다 새로운 컨셉의 체험형 전시를 선보인다. 서비스의 핵심은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 소품, 조명이다. 브랜드는 디자인 플레이어들과 단단히 연계한 에코시스템 을 구축하고 이들이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을 최상의 환경에서 전시하고 기 획하며 소비자와 연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