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프리 선언을 하다
HS Ad 기사입력 2023.08.22 12:00 조회 1200



오늘날 음악가란 직업 하면, ─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음악가라면 ─ 흔히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중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하는 클래식 음악 장르로 좁혀봐도 그렇습니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연주자들은 물론 조성진, 임윤찬과 같은 젊은 스타 연주자들 역시 전 세계를 누비며 막대한 부와 명성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글로벌 거대 음반 기획사에 소속되어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 하에서 연주 활동을 펼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연예인과 같은 대중적 인기를 확보하기 위한 각종 마케팅 프로그램을 지원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스타성이 입증된 연주자들은 더 거액을 약속하거나, 자신의 고상한 예술가 기질을 소화해 줄 또다른 기획사로의 이적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프로의 세계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음악가들이 이와 같은 부와 명예,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의 일입니다. 음반이라는 매체가 탄생하면서 공연장에서 연주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확보되었고, 각종 언론 미디어를 통해서는 음악가 자신들에게 고고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반이나 대중 매체가 없었던 전근대 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에겐 이러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매우 한정된 시장에서,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기예(技藝)를 세일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불합리한 계약에 묶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에 쪼들린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위인전이나 음악교과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음악가들 조차 그러한 삶을 살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번 글에서는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던 과거의 ‘직업 음악인’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이 스스로의 전문성과 스타성을 입증해오기까지의 험난했던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음악 노동자의 시대
 
음악의 역사는 상당히 깁니다. 아마도 본격적인 역사 기록 이전의 시대부터 사람들은 노래를 불러왔을 것입니다. 음악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 ‘음악’이 이론적 형식과 기교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잡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가’가 예술가로 인정받는 데는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기독교 문화가 자리잡은 중세 시대에는 음악이 신을 찬미하는 수단으로서 본격적인 형태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직 원시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악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름을 남긴 작곡가는 없었지만 구전이 아닌 기록을 통해 음악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음악은 그레고리안 성가로 대표되는 단성음악(單聲音樂, Monophony)이 주를 이뤘습니다. 즉, 하나의 성부, 하나의 멜로디로만 이루어진 음악입니다.

단순했던 중세 음악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보다 복잡 해집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하나의 곡 안에 다양한 성부를 동원해 복수의 멜로디가 존재하는 음악, 즉 대위법과 같은 전문적 작곡 수법이 생겨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이때부터 음악을 작곡하는 일이 전문적인 기예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음악의 형태가 이때부터 갖추어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한 음악을 작곡하는 일이 작곡법을 배운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 음악의 수요처는 굉장히 한정적이었습니다. 요즘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 번듯한 전문 공연장 하나 없었기에 작곡과 연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대중을 상대로 돈을 번다는 관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음악의 수요처는 크게 두 곳이었습니다. 바로 교회와 왕실(귀족)의 궁정이었습니다. 음악가들은 교회 또는 궁정에 속해 있으면서 연주를 하면서 동시에 작곡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출처: DW Classical Music 공식 유튜브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일평생 교회 소속 오르가니스트이자 지휘자 그리고 작곡가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는 바흐가 27년 간 칸토르(성가대 지휘자)로 봉직한 곳이기도 하다. 영상은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연주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St. Mathew Passion)」
 
우리가 잘 아는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역시 교회 또는 궁정에서 연주자로 활약하면서 작곡을 병행하였습니다. 교구의 주교에 의해 성가 작곡을 위촉받거나, 왕실과 귀족의 의뢰에 의해 혹은 귀족의 유흥과 여가를 위해 스스로 곡을 만들고 직접 연주까지 한 것이지요. 따라서, 중세부터 18세기 중반, 즉 후기 바로크 시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음악가들은 독립된 예술가가 아니라 고용된 근로자의 개념에 더 가까웠습니다. 또한 대부분 박봉을 받은 데다 외부 시장 또한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교회나 궁정 밖에서 자립한 음악가는 손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음악가들이 휴가를 청하는 방식
 
귀족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가 있다고 해서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왕과 귀족은 (슈퍼)’갑’이고, 음악가는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졌어도 어디까지나 ‘을’이었습니다. 음악사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음악가들, 이를 테면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같은 당대의 대가(大家)라 할지라도 궁정 내에서의 취급은 사실상 하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고 합니다. 속되게 표현하자면 귀족들이 자신들의 연회 때 혹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부르는 ‘딴따라’인 셈이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요즘의 ‘딴따라’처럼 수입이 아주 많지도 않았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는 오페라의 시초로 불리는 「오르페오(L’Orfeo)」와 종교음악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저녁기도(Verspro della Beata Vergine)」 등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전설적인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가로 사는 내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은 정리해고를 당하기도 했는데요. 그가 오랜 시간 봉직한 만토바 공작의 궁정이 재정난을 겪자 퇴직금도 없이 푼돈만 받고 쫓겨난 것입니다. 그가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면 국보급 음악가로 추앙받고도 남았을 인물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음악가들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의 갑질에 멋지게 한 방 먹인 사례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 방식이 그렇게 우아할 수가 없습니다.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의 궁정 악장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후작은 매년 여름이면 궁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궁으로 하계휴가를 떠나곤 했습니다. 한 번은 후작이 여름이 다 끝나가는데도 궁정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궁정 악단 단원들 역시 후작의 고상한 즐거움을 위해 후작을 따라 출장을 가야 했는데, 휴가가 무한정 길어지면서 가족들과 난데없이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에 단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하이든은 자신의 고용주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결심했고, 교향곡 45번의 마지막 악장에 멋진 풍자를 가미했습니다. 바로, 연주가 진행될수록 각 파트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무대 뒤로 사라지도록 곡을 쓴 것이지요. 연주가 막바지에 이르면 바이올린 주자 몇몇만 남다가 종국엔 그마저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연주회가 펼쳐지던 홀 안엔 단원도 없이 지휘하는 하이든과 이를 지켜보던 에스테르하지 후작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후작은 하이든과 단원들의 깊은 뜻을 바로 궁정으로 복귀한 뒤 바로 휴가를 보내줬다고 합니다. 이후, 이 교향곡엔 ‘고별’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우아하면서도 효과 만점이었던 을의 시위였습니다.

 
출처: 유튜브 Hunjamoryce


하이든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담은 교향곡 45번 ‘고별’. 마지막 4악장 피날레가 연주되는 동안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기 시작하더니, 연주 막바지엔 지휘자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의 ‘고별 교향곡’ 연주는 지휘자 바렌보임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웃음을 짓게 만든다.

 
모차르트, 프리 선언을 하다!

몬테베르디나 하이든보다 한 세대 뒤에 등장한 모차르트는 사정이 조금 나았지만 그 역시 고용주들의 갑질로 적잖이 고생을 했습니다.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오늘날 ‘모차르트 성지(聖地)’로 불리는 잘츠부르크(Salzburg)는 역설적이게도 젊은 시절 모차르트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준 곳이기도 합니다. 고용주였던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마찰을 빚으면서 음악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게다가 푼돈에 불과한 급여로 어렵사리 생계를 꾸리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명성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궁핍한 삶을 살았습니다.

모차르트가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수도 빈(Wien, 비엔나)으로 이주 한 뒤의 일입니다. 음악의 도시 빈에서 모차르트는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오늘날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부터 모차르트는 궁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본격적인 대중을 타깃으로 한 작품을 기획하고, 직접 지휘와 연주까지 하게 됩니다. 즉, 특정 귀족의 궁정이나 교회에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 전업 작곡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예능인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아나운서가 프리 선언을 한 뒤,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빈은 귀족이 아니더라도 시민 누구나 빈 곳곳에 위치한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입장에서는 귀족 시장에서 대중시장으로의 타깃을 전환하기에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는 이 시기에 대중들의 수요와 기대를 충족시키는 작품을 대거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대중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던 오페라 작곡에 집중했는데요.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Don Giovanni)」, 「마술피리(Die Zauberfloete)」 등이 빈 시절에 작곡해 흥행 대박을 터트린 작품들입니다.
 

 
출처: 유튜브 Andrea YT


빈은 모차르트가 지닌 천재성과 스타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지닌 도시였고, 이러한 풍토 하에서 그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을 여럿 남길 수 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등장한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피」는 모차르트가 빈에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작곡한 오페라 작품이자 대중적으로 큰 흥행을 거둔 첫 작품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작품들의 연 이은 성공으로 많은 수입을 올렸음에도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로 금세 자금난에 허덕이게 됩니다. 이에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건강을 작곡에 매달리다 결국 35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맙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작품은 모차르트 최후의 대작 「레퀴엠(Die Requiem)」으로, 결국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 곡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몸을 혹사하며 만든 그의 최후의 걸작이 장송곡이라는 것 역시 웃지 못할 음악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베토벤, 甲보다 최초의 乙!

모차르트가 본격적인 프리랜서 전업 음악가의 시대를 열어젖혔다면 베토벤은 음악가의 위상을 그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그 역시 귀족에게 곡을 의뢰받아 작곡한 적도 있고, 또 자신의 후원자를 위해 곡을 헌정한 사례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계약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예술가의 신분으로, 자의에 의한 창작 혹은 연주 활동을 했습니다. 이 점에서 귀족에 종속된 하인의 신분으로 사실상 노동에 가까운 음악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 작곡과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또한 베토벤은 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원치 않을 땐 작품이나 연주 의뢰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베토벤은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리히노프스키 공작조차 베토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을 정도라고 하지요. 이처럼 음악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던 그의 인식을 대변해 주는 한마디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세상에 왕자는 수천 명이 있고 또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하나뿐”

이러한 베토벤의 배짱 영업(?) 방식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독주곡, 협주곡, 교향곡 가릴 것 없이 당대 그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뛰어난 창작 능력 때문입니다. 평생을 신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살면서 모진 산고 끝에 낳은 그의 위대한 작품은 왕족이나 귀족조차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동시에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대중들 역시 베토벤의 든든한 뒷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광고인들이 지녀야 할 무기는 무엇일지, 그리고 변치 않는 믿는 구석이 무엇이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출처: 유튜브 Hochrhein Musikfestival Productions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 베토벤이었지만 자신을 후원해 준 후원자이자 제자이며, 평생의 우정을 쌓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루돌프 대공에 대해서 만큼은 매우 각별했다. ‘피아노 트리오 제7번 B-flat 장조’ 일명 ‘대공 트리오’는 베토벤이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작품으로 대공에 대한 베토벤의 절절한 감정이 선율에 잘 녹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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